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만 폴란스키 (문단 편집) === [[홀로코스트]] 피해 === 본래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3년 뒤인 1936년에 부모의 고국인 폴란드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뒤인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폴란스키 일가는 [[크라쿠프]] [[게토]]에 갇히게 된다. 불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로 이송되어 살해되었고, 아버지 또한 [[오스트리아]] [[린츠]] 근교에 위치한 마우타우젠-구젠 강제수용소[* "계도 불가능한 정치범"들로 분류된 사람들이 끌려온 3등급 노동수용소이다. 1938년 빈과 린츠에 화강암 석재를 공급하고자 한 비너-그라벤 사의 요구로 세워졌다. 이 회사는 SS(나치 친위대) 소유의 DEST(독일 토목 및 석재 유한공사) 소속이었으며 대표인 오스발트 폴 또한 후에 친위대 대장까지 진급하는 열성 친위대원이었다. 이를 위해 [[다하우|다하우 수용소]]의 일부 인원이 재배치되어 건설하였다. 마우타우젠 수용소와 구젠 1, 2, 3 수용소를 중심으로 하여 오스트리아 전역의 101개의 보조수용소(Außenlager)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콤비나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절멸수용소들과 같은 가스실은 없었으나 노동을 통한 절멸(Vernichtung durch Arbeit)을 추구하던 곳인 만큼 수감자들은 이곳에 부속된 벽돌 공장, 군수공장에서 끔찍한 중노동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DEST 소속 회사들뿐만 아니라 바이엘, 마우저, 하인켈, 메서슈미트 등 독일 유수의 대기업들 및 수많은 오스트리아 향토 기업들은 이곳의 이러한 참상에도 아랑곳 않고 저렴한 노예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 과정에서 총 '''12~32만 명의 수감자들이 이곳에서 살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45년 소련군이 오스트리아로 몰려오자 나치는 수감자들을 동원해 방어선을 건설함과 동시에 남은 수감자들을 지하공장에 집어넣고 붕괴시켜 매몰시키려 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학살 명령은 수행되지 않았고, 이후 SS가 물러가고 그 자리를 오합지졸인 빈 출신 [[국민돌격대]]원들이 채우면서 수용소의 실질적인 주도권은 수감자들에게로 옮겨갔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무장하여 인근 독일군 패잔병들의 공격을 격퇴하다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전후 이곳은 1970년 박물관으로 재개장되었고, 현재까지도 끔찍한 나치 정권의 범죄를 증언하는 역사적 장으로서 남아 있다.]에 끌려가 노역을 당하게 된다. 끌려가기 직전, 폴란스키의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일제검거 현장을 기웃거리던 그에게 도망치라고 속삭였고, 폴란스키는 10살 되던 해인 1943년에 게토를 탈출해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던 한 폴란드 [[가톨릭]] [[교회]]의 보호를 받았다. 천만다행히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남았고, 전후 아들과 재회하였다. [[파일:attachment/roman_polanski_1.jpg]] [[https://youtu.be/tilZdR0Ym_0|샤론 테이트와 결혼식 영상]] [[https://youtu.be/5h_o8E_A3pc|#]] [[폴란드]]에서 데뷔작 [[물속의 칼]]을 연출했으나, 폴란스키에 의하면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 공산 정부]]가 그 영화를 혹평했고 특히 엔딩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좌절하고 프랑스로 여행을 잠시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 [[베를린 영화제]]등에 노미네이트 되는등 인정받게 되어서 기뻤다고. 이후 [[프랑스]]로 넘어가 제라르 브라슈를 만난 후 막다른 골목의 각본을 적은 후 영국에서 영화 제작자 진 구토스키[*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영화)|피아니스트]]의 제작자 중 한 명이며, 이쪽도 폴란스키처럼 홀로코스트 피해자다.]를 만나 혐오를 찍고 막다른 골목의 연출을 맡았다.[* 폴란스키는 막다른 골목이 자신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워 한다고 한다.] 이후 감독, 배우 등을 하면서 착실히 커리어를 쌓았다. 폴란드 학파 시절 데뷔한 감독 중 국제적으로 성공한 감독으로, 폴란드 영화계가 자랑하는 [[재와 다이아몬드]][* 칸 영화제 비평가협회상], [[철의 사나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의 [[안제이 바이다]]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칸 영화제 비평가협회상,여우주연상], [[세 가지 색: 블루]][*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수상. [[세 가지 색: 레드]],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등이 대표작이다.] 의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와 더불어 폴란드 거장 감독이다. 빼어난 편집 능력으로 가히 젊은 거장의 풍모를 보일 정도가 되었고, 영화 배우 아내 [[샤론 테이트]]와 [[박쥐성의 무도회]] 촬영때 만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